에반게리온 다카포 감상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이뤘다. 더위, 소음, 몸상태 등이 원인이리라. 아니면 그럴수 밖에 없는 건지도.

장장 십수년만에 나온 에바 신 극장판을 봤다. 잠도 안오는데 이거라도 보자는 심정이었다. 결말은 마음에 들었다. ...안노답다고 해야겠지. 몇몇씬은 유치하고 작위적이고 엉터리였지만 안노가 그런 되다만 애어른이라는 것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완성이라고 내놓은 작품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서 놀랐다. 안노 개새끼라고 스포 내용만으로 추측해서 덩달아 보지도 않고 욕을 하면서 1년을 더 기다렸는데, 그 결과물이 의외로 자기 나름대로의 네온 제네시스 에바 완결이었다. ......좀 유치했지만. 나도 결국 에바를 졸업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지는 구원받은 건가? 아스카는? 겐도와 유이는? 해결되지 않은 떡밥 투성이고 쓸데없는 설정 투성이다. 구멍이 많다 못해 뻥뻥 뚫려있다. 안노는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 미래소년 코난 특유의 '살아간다'는 것을 계승했다. 물론 자기 취향의 특촬 설정과 서비스 씬을 잔뜩 버무린채로. (안노는 울트라맨이나 고질라나 만지작 거렸어야 했다.) 에바는 분에 지나치게 넘치는 성공을 안겨주었고 그를 망치고 말았다. 엉망진창의 큐와 다카포는 그의 인간적인 내면을 엿보여 준다. 파에서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감에 잡아먹힌 우울한 안노가 큐의 실패를 딛고 장장 14년이나 걸려 내던져도 될 에바를 어떻게 그러모아 짜집어 낸 것이 기적이다. 에반게리온 오타쿠로써 큐와 다카포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연결고리다. 큐가 정상적이었다면 다카포가 좀 더 빨리 더 나은 퀄리티로 나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에바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차마 안노를 욕할 수 없었다. 다카포를 만드느라 없는 설정들을 그러모우고 없는 각본을 무리해서 짜집었을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 그거 하나 만큼은 참 잘 계승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아무리 각박해져도 그 시대와 장소가 살아갈 무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신지는 자기혐오와 우울, 고독에서 길고 긴 시간을 울다가 생각하다가 토하다가 고뇌하다가 결국 다시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 그리고 사회로 돌아간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답을 가지고. 이는 그의 아버지 겐도 역시 거쳐왔던 순환이었다. 결코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극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신지는 최종장에서 자신이 집착하는 여러가지 굴레를 떠나 보낸다. 아버지에 이어 아스카도 카오루도 레이도...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작별도. 목과 팔이 없는 거대한 리리스의 머리가 그렇게 불쾌한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납득이 간다. 수많은 이들과 하나되는 결말도 뿔뿔이 흩어지는 결말도 예정 그 자체이다.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복잡해지다가 이윽고 종말이 다가온다. 세상은 단순한 것이다. 정말 간단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지키는 것.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목욕을 하는 것. 먹고 자고 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지도 결국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든 없든 말이다. 신지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결국 부자간의 대화가 겐도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었다. 다카포는 어른이 되라고 강요하는 작품은 아니다. 단지 작품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앞서서 제호흡을 놓쳤을 뿐이다.

이런 젠장. 난 벌써 서른셋이다. 38살이면 나도 생물학적으로 최대 수명에 도달한다. 아무래도 나는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삶에서 벗어난 삶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손가락질 받는 시대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거나 모자라다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찍 절망하다 죽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낙오자들, 패배자들, 무능력자들, 히키코모리들... 경쟁에서 이탈한 자들. 보통 그 이하가 된 자들. 그럼에도 삶은 잔혹하게 때론 상냥하게 이어진다. 삶은 적응한 자들 만의 것이 아니다. 도태된 자들에게도 똑같이 부여되는 것이 바로 삶이다. 이 작품은 구원의 메세지를 주거나 어른이 되라고 채찍질하지도 듣기 싫은 충고나 노력하라며 오지랖을 부리지도 않는다. 되려 지극히 이기적인 안노 자신을 위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역으로 화가 안나는 거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다. 너의 고독도 너의 불안도 너의 고통도 너의 모든 것이 너로 말미암아 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튕겨나올지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간의 수많은 경험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끝끝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충분한 것이다. 행복의 형태는 다양하다. 소중한 것을 만나면 그것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상실에서 이어지는 것도 있다. 아니면 소중한 것을 죽을때 까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봐야 한다. ...언제 나의 때가 올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또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어떤 형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무의미 한 것은 없다.

매미는 여름의 보름을 위해 수년을 땅속에서 산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매미의 시체를 보며 동정하지 말라. 매미는 그 짧은 여름을 그 누구보다도 필사적으로 살았다. 에반게리온은 나에게 있어 끝나지 않는 여름과 같았다. 그리고 오늘 에바는 끝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댓글,

리린냥

컬트 영화 리뷰 블로그가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